춤웹진7월호 <어느 안무가의 조용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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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안무, 경희댄스시어터 〈굿모닝 일동씨〉
국내에서 안무자 행사는 거의 모두 서울에서 열리며 이런 현실을 당연시한다면 그냥 무신경하게 넘어갈 법하다. 그런 중에서 부산국제무용제는 젊은 안무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부대 행사로 ‘AK21 국제안무가육성경연’을 해마다 열고 있다. ‘AK21’ 같은 지역의 행사가 오랜 기간 열려 왔다는 점에 주목해보면 응당 지역 행사로서의 의의부터 생각하게 된다. 지역에서 전국의 안무가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드문 현실에서 ‘AK21’이 위상을 다져나가야 할 것은 물론이다.
‘AK21’은 원래 그 문제 의식이 ‘지역’의 ‘젊은’ 안무가들이 적다는 데서 비롯했을 터이며, 실제로는 경연제로 열리는 이 행사에 전국에서 젊은 안무가들이 응모하고 있다. 전국의 젊은 안무자들 사이에서 ‘AK21’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가운데 지역성과 젊음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방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조급하게 딱 부러진 답을 구하기보다는 우선 지난 몇 해 ‘AK21’이 열려온 방식을 의도적으로 되돌아보는 것과 아울러 이 행사만의 특성을 갖추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희댄스시어터 〈굿모닝 일동씨〉 ⓒ김채현 |
올해 ‘AK21’(6. 8.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는 결선의 네 작품 중에서 대상이 경희댄스시어터의 〈굿모닝 일동씨〉에게 주어졌다. 21살 까까머리 청년으로 부산(이라는 도시)에 와서 살다 보니 이젠 50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된 어느 소리꾼의 인생 소회(所懷)가 이 공연의 단서다. 공연의 기본 장치로서 H. 고레츠키의 곡(〈교향곡 3번〉)이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배경 음악으로 쓰여 분위기를 낮고 무겁게 뒷받침하였다. 소리꾼의 소회는 스토리 구성 없이 작품 저변의 동기로 작용하며, 그것은 일테면 회한(悔恨) 같은 복합적인 정서로 전달된다. 고레츠키의 음악이 어느 인간의 소회와 결합하면서 무대에는 공연 초장부터 둔중하면서도 조금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경희댄스시어터 〈굿모닝 일동씨〉 ⓒ김채현 |
일상복 차림새로 여남은 명의 인물이 고개를 숙인 채 등장하는 데서부터 상황은 착 가라앉은 편이다. 먼지처럼 비루한 존재들이 그려내는 삶, 체념이 그 같은 삶을 달관하도록 유도할 적에 느껴지는 숙연함이 주도하는 분위기이다. 얼굴에 무선 마이크를 부착한 안무자 박재현이 수시로 내뱉는 단편적인 대사들은 폐부 가까이 다가온다. 원망 또는 원한과 슬픔이 뒤섞여서 떨리는 낮은 중얼거림으로 떠듬떠듬 전해지는 대사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날 때 죽지 못 했을까’ ‘너는 왜 태어날 때 죽지 못 했을까’ 등이 주내용이다. 실은 태어날 때 죽지 못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게 세상 아닌가.
작품 제목으로 쓰인 일동이라는 인물은 출연진 명단 속의 양일동과 이름이 동일하다. 이번 공연은 소리꾼 양일동이라는 실존 인물의 일화를 옮긴 것일지도 모른다. 출연자 가운데 창을 하며 출연진들과 섞이는 그가 양일동일 것이다. 그의 창은 전반부에선 외마디 성격의 외침으로, 후반부에선 가락을 타며 사설을 읊어졌고 처연하고도 애절한 기미가 강하였다. 박재현의 중얼대는 듯한 외마디 중얼거림들과 처연한 창이 수시로 얽히는 속에서 태어날 때 죽지 못한 인간들은 삶의 군상을 간결하게 엮어나간다. 어느 출연자가 출연자 집단 위로 무동을 타고 올라가 문 너머 저 멀리를 향해 ‘일동씨~!’ 하며 다정하며 애타게 외쳐보건만 문 아래에 얼굴을 숨긴 채 숨을 죽인 일동씨는 답도 않는다.
경희댄스시어터 〈굿모닝 일동씨〉 ⓒ김채현 |
흐트러지고 모이기를 다양한 구성으로 되풀이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강한 에너지를 담고 있으나 숙연한 분위기를 넘어서지 못하며 숙연한 분위기는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들어주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상관도 않은 채 고레츠키 교향곡의 합창 부분은 마냥 합창 부분 그것대로 흐를 뿐이다. 모두들 눌리고, 서로 간의 관계는 이미 토막난 상태로서, 알아챈다고 해서 서로 구원의 손길을 뻗을 처지도 아닌 듯한 사람들의 슬픔에서 그들은 ‘나는 왜 태어날 때 죽지 못 했을까’ 하는 원망 아닌 원망을 부르짖는 것 같다. 〈굿모닝 일동씨〉에서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배회하는 사람들의 슬픔이다. 작품 말미에 이르러 애절한 창 소리는 그들의 움직임을 격렬하게 만들 뿐 슬픔은 해소되지 않으며, 누군가가 다시 외치는 ‘일동씨~!’ 또한 답 없는 외침으로 허공을 맴돌 뿐이다.
‘AK21’에는 출품작들은 25분 길이로 제한되는 규정이 있다. 장치와 규모에서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굿모닝 일동씨〉는 나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중간 중간의 중얼거림이 배경 음악과 충돌하여 잘 전달되지 않은 것은 이번 공연의 큰 취약점이었고, 서사 전개에서도 명료함이 요구되는 부분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런 명료함을 보완하는 전제에서 다시 헤아려 보면 작품 구성에서도 손질될 점들이 나올 것이다.
경희댄스시어터 〈굿모닝 일동씨〉 ⓒ김채현 |
전체적으로 보아 〈굿모닝 일동씨〉는 누구나 익숙한 실존적인 물음을 안무자 특유의 실존적인 태도로 풀어나갔다. 안무자 박재현은 그간 다반사로 보였던 패러디적 경향을 벗어나 이번 공연에서, 안무자 자신이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으나, 관객과의 공감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과 다름 없이 세상 사람을 작품화하는 그의 기조는 여전했을 것이다. 그런 중에서도 그간 그에게서 자주 형상화된 그로테스크(한 세계)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이번에는 일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객석과 편하게 소통하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쪽이 나은 경향이라 단정할 일은 아니로되 공감과 소통이라는 기준은 참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AK21’이 이처럼 안무가의 변신과 성장이 가능한 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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